㈜한국탑뉴스 송행임 기자 |
김부조(시인·칼럼니스트) 인생의 쉼표, 그 느림의 미학

▲김부조(시인·칼럼니스트)
도시는 늘 빠르게 움직인다.
아침 출근길의 바쁜 걸음, 카페의 주문 대기줄, 지하철의 짧은 환승 시간까지 모든 장면이 속도를 중심으로 배열된다.
그러나 이 촘촘한 리듬 속에서도 가끔, 균열처럼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햇살이 창가에 조용히 머무는 시간, 오래된 골목의 느긋한 공기, 혹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 바라본 푸른 하늘의 색 같은 것들이다.
이 사소한 정지의 순간들이야말로 ‘느림의 미학’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들은 쉼 없이 달리거나 속도를 내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현대인들은 긴장된 삶을 살면서 느슨하고 느리게 사는 여유를 차츰 잊어가고 있다.
인생을 좀 더 오래 누리며 자신이 품었던 꿈을 활짝 펼치려면, 잠시 멈춰 서서 쉬어가는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멈추어 쉼표를 찍은 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과 너그러운 나무들의 대화가 귓전을 은은히 울릴 것이다.
그렇게 멈추어 쉼표를 찍은 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 갓 태어난 아기 새의 몸짓과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수줍게 핀 들꽃과 너그럽게 침묵하는 여유의 숲이 반겨 줄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도 얼핏 보일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가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푸른 꿈도 보일지 모른다. 이 모든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무작정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오느라 보고 듣지 못한 채 놓쳐 버린 소중한 것들이다. 무작정 달려가다 보면 놓치는 게 많다.
잠시 쉬어 가며 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걸린 조각구름도 감상하고, 흐르는 시냇물에 두 발을 담근 채 잊혀진 옛 노래도 한 곡쯤 기억해 내는 여유가 필요하다.
‘오래 엎드린 새는 반드시 높이 날고, 앞서 핀 꽃은 홀로 먼저 지느니라.
이를 알면 발 헛디딜 근심을 면하고, 조급한 마음을 덜 수 있으리라.’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무작정 급하게 서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속성속패(速成速敗)라는 말도 있다. 아무렇게나 급하게 이루어진 것은 쉽게 결딴이 난다는 뜻으로 이 역시 신중치 못하고 빨리 이루려고만 하는 어리석음을 빗댄 표현이다.
급한 마음은 대체로 짧은 생각을 낳게 되고, 그런 생활 패턴으로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사고와 불행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동화작가 이솝은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새로운 힘을 얻어, 지친 일상을 추스를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이 아이들과 노닥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솝을 보고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이솝은 잠자코 옆에 있던 현악기의 활을 집어든 뒤 느슨하게 풀어 그들 앞에 놓은 뒤 말했다.
“나는 지금 느슨해진 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줄을 계속 팽팽하게 매어 놓으면 활은 부러지고 말지요.
그러면 연주가 필요한 때에 제대로 된 음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꼭 악기의 활을 느슨하게 해 두는 시간을 가집니다. 당신이 보기에 제가 느림보, 바보 같겠지만 지금은 더 나은 다음 연주를 위해 잠시 줄을 느슨하게 풀어 두는 시기입니다.
쉬지 못해서 악기를 부러뜨리는 진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말에 그들은 비로소 침묵했다.
순간의 한가로움이 게으름이 아니라, 다시 힘 있게 살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솝이 활을 조심스레 내려놓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도 때때로 그렇게 느슨해져야만 다시 팽팽한 울림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 ‘느리게 사는 삶’을 제시했다.
‘느리게 산다는 것’. 그것은 바로, 게으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천천히 에둘러 가더라도 인생을 바로 보자는 의지라고 생각된다.
우리도 이제, “빨리 달려갈수록 삶이 여유로워지기는커녕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 당한다”는 피에르 쌍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